가짜 어사
Novel / 가짜 어사 · 무료 공개

제3화. 고개를 들라

EPISODE 03 / 03
공백 포함 12,234자 · 약 24분
목차 역사 고증 ↓
0%
배경 테마
글자 크기
18px |
조판 옵션
역사 고증 ↓

풍곡현 관아 마당에 바람 소리마저 뚝 끊겼다.

오른손을 번쩍 치켜든 막동의 손아귀에서 둥근 구리 패 하나가 한낮의 햇살을 받아 번뜩였다. 손때와 흙먼지가 엉긴 구리 표면 위로 또렷이 돋을새김 된 다섯 마리의 말. 그 아래로 절반쯤 뜯겨 나간 쪽빛 명주 끈 토막이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나? …암행어사다.”

막동의 입에서 떨어진 말 한마디에, 머리 위까지 육모방망이를 치켜들었던 사령 셋이 돌부처처럼 그대로 굳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리숙한 나그네 하나쯤 반죽음을 만들어 놓겠다며 눈을 부라리던 사령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치켜든 육모방망이 끝이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힘없이 아래로 축 처졌다.

툭. 투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령들의 손에서 몽둥이가 흙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동헌 댓돌 위에 버티고 서 있던 이방이었다. 넓은 소매 속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던 이방의 가늘고 긴 눈이 단박에 동전만 해졌다. 마패의 말 다섯 마리를 확인한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히, 히익—!”

이방은 비명 같은 숨을 들이켜며 댓돌 아래로 몸을 날렸다. 어찌나 급하게 뛰어내렸는지 한쪽 가죽신이 벗겨져 나뒹굴었는데도 주워 신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버선발로 마당 흙바닥을 내달려 온 이방이 막동의 코앞에 무릎을 꿇더니, 이마가 땅에 닿도록 납작 엎드렸다.

“어, 어사 나리이—! 천한 눈이 멀어 귀하신 몸을 몰라뵙고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이방이 이마를 흙바닥에 찧으며 부르짖자, 넋이 나가 서 있던 사령들과 아전들도 우르르 무릎을 꺾었다. 순식간에 관아 마당 가득 수십 명의 등판이 파도처럼 납작하게 깔렸다.

정작 가장 크게 놀란 것은 마패를 들고 있던 막동 자신이었다.

방금 전까지 제 목덜미를 짓누르고 정강이를 걷어차려던 그 무서운 관아 사람들과, 고을에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방 나리가 제 발밑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벌벌 떨고 있었다.

‘아, 아이고머니나!’

누군가 제 앞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자, 스물다섯 해 동안 뼈에 새겨진 종놈의 본능이 머릿속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왔다.

흙바닥에 반쯤 주저앉아 있던 막동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실거렸다.

“아이고, 일어나십—”

‘십쇼’가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오른 순간, 막동은 제 혀끝을 질끈 깨물었다.

비릿한 침이 입 안에 고였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십쇼’가 터져 나오면 방금 치켜든 마패고 나발이고 그 자리에서 능지처참이었다. 막동은 굽혀지려던 허리를 부러질 듯 꼿꼿이 펴고,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말을 억지로 꿀꺽 삼켰다.

“크, 큼! 에헴!”

막동은 왼손을 등 뒤로 돌려 허리춤을 짚고, 죽은 윤서겸 나리가 언짢을 때 내던 낮고 차가운 목소리를 목구멍 밑바닥에서부터 박박 긁어 올렸다.

“…고개를 들라.”

낮게 깔린 목소리가 고요한 관아 마당을 울렸다.

엎드려 있던 이방이 어깨를 움찔 떨며 조심스레 고개를 반 치쯤 들었다. 막동은 제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도포 자락 아래 두 발에 잔뜩 힘을 주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쿵쾅거렸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던 나리의 그 무심한 눈빛만은 필사적으로 흉내 내어 이방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던 찰나였다.

“…이히히히.”

관아 대문 문간 쪽에서 느닷없이 새어 나온 기괴한 웃음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땅바닥에 코를 박고 있던 사령들과 아전들의 고개가 일제히 문간 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낡은 보따리를 어깨에 걸친 채, 엉킨 산발 머리에 누런 이를 드러내고 히죽거리는 종놈 구렁이가 서 있었다.

사령들의 눈빛이 ‘저 미친 종놈은 또 뭔가’ 싶어 흔들리자, 구렁이는 능청스럽게 콧수염 밑을 쓱 훔치며 막동의 등 뒤로 반걸음 바싹 다가섰다.

“어사 나리 행차시다! 길 비켜라, 이놈들아. 이히히.”

구렁이가 제법 어사 수행원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리자, 이방은 구렁이에게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두 손을 비볐다.

“나리, 이 누추한 마당에 서 계실 일이 아니옵니다! 어서, 어서 동헌으로 드시옵소서!”

동헌(東軒) 대청마루 상석, 두툼한 모란 무늬 보료 위.

생전 처음 사또나 앉던 동헌 가장 높은 상석에 올라앉은 막동은 엉덩이 밑이 바늘방석처럼 따가워 죽을 맛이었다.

평생 대청마루란 걸레를 들고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닦거나, 기껏해야 댓돌 아래 마당에 꿇어앉아 처분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대청 꼭대기 자리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다리를 어떻게 포개야 할지 손을 어디에 얹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엉덩이만 들썩거렸다.

“사, 사또 대령이오—!”

안채 쪽 행랑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풍곡현 사또가 허겁지겁 기어 나왔다.

대낮부터 얼마나 술을 퍼마셨는지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에 쓴 사모(紗帽)는 한쪽으로 비스듬히 돌아가 있었다. 관복 고름조차 제대로 매지 못한 채 대청 위로 기어 올라온 사또는 막동 앞에 무릎을 꿇자마자 딸꾹질부터 터뜨렸다.

“히끅! 어, 어사 나리… 소관 풍곡현감, 성은을 입어… 히끅! 귀하신 암행어사 나리를 뵙사옵니다…”

코끝을 찌르는 시큼한 술 냄새가 대청 가득 번졌다.

‘이 고을 사또라는 양반이 대낮부터 만취해 자빠져 있었구나.’

막동은 혀를 차려다 말고 대청 아래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마당 구석에는 이방이 두 손을 모아 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열린 관아 대문 너머로는 아까 세곡 자루가 터져 흙바닥의 쌀을 줍던 백발 노인이 사령들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고 있었다.

막동이 거기까지 끌려 들어온 이유가 바로 저 노인이었다.

막동은 턱을 치켜들고 대문 밖의 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문밖에 서 있는 노인을 이리로 데려오라.”

이방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사령들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 흙먼지 투성이가 된 노인을 동헌 마당 앞까지 부축해 왔다. 노인은 어사라는 말에 겁에 질려 땅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어, 어사 나리… 살려 주시옵소서…”

“울지 말고 말해 보거라. 아까 문밖에서 어찌하여 쌀자루를 부여잡고 울고 있었느냐.”

막동이 최대한 부드러우면서도 위엄 있게 묻자, 노인은 갈라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소인이 일 년 내내 피땀 흘려 지은 벼를 찧어, 집에서 분명 한 말이 넘게 채워 왔사옵니다. 하온데 관아 문 앞에서 아전 나리들이 저 큰 되로 쌀을 깎아 재더니, 한 말이 안 된다며 발길질을 하고 쌀자루를 찢어 놓았사옵니다… 나리, 이 쌀까지 빼앗기면 소인의 손주 놈들은 올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사옵니다!”

노인의 피 맺힌 울음소리에 대청 아래 이방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나, 나리! 저 늙은이가 노망이 들어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옵니다! 관아의 법도가 지엄하온데 어찌 정해진 되가 아닌 다른 것을 쓰겠나이까!”

막동은 이방의 변명을 듣는 둥 마는 둥, 노인의 갈라진 손마디와 터진 무명 자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어젯밤 배 호방의 집에서 구렁이가 했던 말이 귓전을 때렸다.

‘그 갈비, 그 쌀… 이 동네 세곡 빼돌린 거요.’

막동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이방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낮게 명했다.

“그 되, 가져와 보거라.”

이방의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었다.

“예? 되… 말씀이시옵니까?”

“방금 저 노인의 쌀을 재었다는 그 되 말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 당장 가져오라!”

막동이 호통을 치자 이방은 땅에 머리를 찧으며 대답했다.

“예, 예이! 당장 대령하겠사옵니다! 여봐라, 문밖의 되를 어사 나리 앞으로 가져오너라!”

고개를 숙인 이방이 옆에 꿇어앉은 아전에게 찰나의 눈짓을 던졌다. 아주 재빠르고 교활한 눈빛이었다. 아전이 대답과 함께 대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 아전이 네모난 나무 되 하나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동헌 계단 아래에 내려놓았다.

막동은 보료 위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 나무 되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아까 관아 대문 밖에서 노인이 사령에게 밀쳐질 때, 막동이 언뜻 보았던 아전의 되는 옆구리가 불룩하고 입구가 유난히 넓적했다. 평생 주인집 곡식 가마니를 지게로 지어 나르고 말과 되로 쌀을 퍼 담던 노비의 눈썰미였다. 그런데 지금 계단 아래 놓인 나무 되는 반듯하고 아담한 것이, 한눈에 보아도 방금 전 문밖에서 쓰던 그 배 부른 되가 아니었다.

‘바꿔치기했구나,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이.’

막동의 주먹이 도포 소매 속에서 불끈 쥐어졌다.

하지만 당장 “이건 아까 그 되가 아니지 않느냐!” 하고 소리칠 수가 없었다. 저 이방 놈은 관아 낙인이 찍힌 정식 되라고 우길 터이고, 품속에 윤서겸 나리가 남긴 놋쇠 자(유척)가 들어 있긴 했으나 까막눈인 막동은 그 자에 새겨진 눈금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재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어사가 도량형 법도도 모른다는 밑천만 들통날 판이었다.

막동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가 천천히 몸을 뒤로 젖혔다.

“…우선 저 노인의 쌀은 쏟아진 것까지 한 톨도 남김없이 거두어 한 말로 치고, 수납 필증을 내주어 돌려보내라.”

“예, 예이!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이방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냉큼 머리를 조아렸다. 막동은 노인이 고맙다며 눈물로 절하고 물러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사또와 이방을 향해 차갑게 덧붙였다.

“고을 창고와 세곡 일은 내 머무는 동안 직접 살펴볼 것이다. 오늘은 여독이 깊으니 객사로 물러가겠다.”

밤이 깊어지자 풍곡현 객사(客舍)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관아에서 어사 나리를 모신다며 군불을 얼마나 지폈는지, 객사 상방의 구들장은 절절 끓어올랐다. 막동은 흰 도포를 벗어 한쪽에 걸어 두고, 뜨끈한 아랫목에 등판을 착 붙인 채 두 다리를 길게 쭉 뻗었다.

언 땅에서 새우잠을 자고 찬밥 덩이를 삼키던 설움이 뜨거운 온돌 기운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막동의 입술 사이로 저도 모르게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얼마나 좋아.”

어젯밤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속삭임이었다.

문간 쪽에 쪼그리고 앉아 등잔 심지를 돋우던 구렁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렸다.

“또 그 소리요? 이히히. 어사 나리 입에 아주 붙었구먼유.”

막동은 흠칫 놀라 일어나 앉으며 헛기침을 했다.

“시, 시끄럽다. 밖에서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아무도 없소. 아전 놈들은 나리 눈치 보느라 얼씬도 못 합디다.”

구렁이는 하품을 길게 늘어뜨리며 문설주에 등을 기댔다.

방 안의 촛불이 가늘게 흔들렸다. 막동의 시선이 아랫목 윗자리, 낮은 좌등 위에 정갈하게 올려 둔 윤서겸 나리의 찌그러진 갓으로 향했다.

어제 솔목에서는 호방이 차려 준 고깃국과 갈비 맛에 취해 정신이 팔렸고, 오늘은 살기 위해 마패를 꺼내 들고 동헌 높은 방석에 앉아 호통을 쳤다. 그러나 혼자 남은 밤의 정적 속에서 그 갓을 마주할 때면, 비 내리던 고개 위에서 피 묻은 손으로 제 소매를 붙잡던 나리의 눈빛이 어김없이 떠올랐다.

막동은 무릎을 꿇고 앉아 좌등 위의 갓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대나무 살이 꺾인 갓 챙 끝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자신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리… 하루만… 딱 하루만 더 빌리겠습니다.”

오늘 동헌에서 이방이 바꿔치기한 그 되. 눈물을 흘리며 흙 속의 쌀알을 줍던 노인과, 고을 어귀에서 빈 바가지를 들고 서 있던 아이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저 도적놈들이 감춰 둔 진짜 큰 되만 찾아내어 백성들 쌀 돌려주고… 그다음엔 정말 조용히 떠나겠습니다요.”

문간에 기대어 실실 웃고 있던 구렁이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늘 상대를 비웃듯 가늘게 휘어 있던 구렁이의 눈매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촛불 아래서 찌그러진 갓 하나를 두고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막동의 뒷모습과, 그 검은 갓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갓의 진짜 주인은 대체 어떤 양반이었길래… 저 종놈이 밤마다 저리 절을 하는 거지?’

구렁이가 입을 다문 채 갓을 응시하는 사이, 문밖 마당의 찬 바람에 창호지가 가늘게 울었다.

달빛이 비치는 객사 창호지 위로 사내의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드리워졌다. 오른쪽 챙이 삐죽하게 찢어진 삿갓의 윤곽이 창호지 위를 스치듯 지나가더니, 기척 하나 남기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같은 시각, 풍곡현 관아의 깊숙한 아전방.

낮에는 마당 흙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비굴하게 길던 이방이, 등잔불 아래서 서늘하게 식은 눈으로 붓을 놀리고 있었다.

작은 한지 위에 깨알 같은 한자로 밀서를 적어 내려간 이방은 종이를 단단히 접어 밀랍으로 봉한 뒤, 방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날쌘 파발꾼에게 건넸다.

“밤을 새워 말을 몰아라. 날이 밝기 전에 한양 대감마님 댁 뒷문으로 직접 전해 드려야 한다.”

파발꾼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밤바람이 천 리 길을 달렸다.

한양 어딘가,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하고 고요한 사랑채 방 안.

단정한 관복 차림을 한 사내가 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등잔불 그늘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놋쇠 부젓가락을 쥔 손가락은 창백할 만큼 깨끗했다.

사내는 방금 풍곡현에서 도착한 밀서를 한 번 훑어본 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화로의 시뻘건 숯불 위에 종이를 던져 넣었다.

화르륵.

이방이 보낸 편지가 붉은 불꽃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검은 재로 오그라들었다. 타들어 가는 불빛 너머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윤서겸은 죽었다. 그럼 저건 누구냐.”

다음 날 해 질 무렵, 풍곡현 관아는 어사 나리를 환영하는 잔치 준비로 들썩였다.

이방이 사또를 부추겨 마련한 자리였다. 겉으로는 암행어사의 노고를 위로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속셈은 고을의 유식한 향반(鄕班)들과 아전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 젊은 어사가 진짜 한양 삼사(三司) 출신의 문신 윤서겸이 맞는지 떠보려는 함정이었다.

객사 방 안에서 막동은 방바닥만 긁으며 끙끙 앓고 있었다.

“아이고, 배가 갑자기 뒤틀려서 못 가겠다고 할까… 잔치 자리에 나갔다가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방문 밖에서 세숫대야와 수건을 받쳐 든 열두 살 남짓한 어린 관노 소년, 돌이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해진 관노 복색에 뺨은 홀쭉하게 패어 있었으나 눈망울만은 초롱초롱한 아이였다.

돌이가 문밖을 한 번 살피더니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나리… 안 가시면 다들 수상히 여깁니다.”

막동이 흠칫 놀라 돌이를 내려다보았다.

“뭐, 뭐라?”

“아까 부엌에서 이방 나리가 좌수 어르신들과 수군대는 걸 들었사옵니다. 어사 나리께서 만약 오늘 잔치에 칭병(稱病)하고 안 나오시면, 무언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요…”

돌이의 말에 막동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안 나가면 당장 오늘 밤에라도 가짜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뀔 판이었다.

“…별수 없구나. 가자!”

막동은 비장하게 윤서겸의 갓을 고쳐 쓰고 관아 연회장으로 향했다.

대청과 이어진 넓은 연회장에는 상마다 기름진 음식과 술병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풍곡현 사또를 비롯해 고을 좌수와 향반 대여섯이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앉아 있었고, 그 뒤편에는 이방이 매서운 눈을 번뜩이며 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온 사헌부 감찰 출신이라 했으니, 술자리 예법이나 상차림 법도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단박에 꼬리가 밟힐 것이다.’

이방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은 막동의 움직임은 이방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또가 술에 취해 손을 떨며 아랫사람에게 먼저 술잔을 돌리려 하자, 막동이 자연스럽게 잔을 막으며 연장자인 좌수 쪽으로 주전자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었다. 상 위에 놓인 은수저와 젓가락의 위치, 탕기(湯器)와 김치 보시기의 배열, 심지어 잔을 두 손으로 받고 고개를 반쯤 돌려 마시는 각도까지—막동의 손짓 하나하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양반가의 엄격한 법도에 들어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막동은 지난 십수 년 동안 양반집 잔치판 뒤에서 수천 번도 넘게 상을 차리고 술을 따르고 수저를 놓으며 양반들의 예법을 등 뒤에서 지켜본 노비였다.

오히려 술에 절어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하고 수염에 국물을 흘리는 풍곡현 사또보다 막동의 몸가짐이 백배는 더 반듯해 보였다.

“허어, 과연 한양 명문가의 법도라, 손끝 하나에 흐트러짐이 없구먼!”

좌수와 향반들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뒤편에 서 있던 이방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방의 눈초리가 사나워지는 사이, 부엌 쪽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관비들이 숯불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놋접시를 막동의 상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간장 양념이 윤기 나게 배어든 두툼한 소고기 산적(散炙)이었다.

고소한 참기름과 구운 고기 냄새가 코끝을 강타하는 순간, 막동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평생 양반들이 먹다 남긴 식은 비계 조각이나 뼈다귀만 핥아 보았지, 저렇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살 산적이 제 상 한가운데에 통째로 올라온 적은 처음이었다.

점잖게 잔을 내려놓던 막동의 입이 저절로 벌어지더니, 목구멍 깊은 곳에서 그 마성의 외침이 불쑥 기어 올라왔다.

“얼마나—!”

연회장 안의 시선이 일순 막동에게 쏠렸다.

막동은 등골이 오싹해져 입을 틀어막는 대신, 광대뼈와 입꼬리 근육을 기괴하게 부르르 떨며 튀어나오려던 ‘좋아~!’를 어금니로 꽉 깨물어 삼켰다. 눈알이 위로 반쯤 뒤집힐 뻔한 것을 억지로 내리깔고, 점잖은 헛기침과 함께 목청을 길게 뽑아 말을 이었다.

“…얼마나 좋은 잔치인고.”

위기는 넘겼으나, 한번 고기 산적에 꽂힌 몸의 본능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막동은 남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사이, 식기 전에 한 점이라도 더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산적 꼬치를 집어 들어 양 볼이 터져라 고기를 밀어 넣었다. 얼마나 빠르게 씹어 삼키는지 두 볼따구가 다람쥐처럼 불룩거렸다.

연회장 구석에서 빈 소반을 들고 시중을 들던 열두 살 관노 돌이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사 나리가… 꼭 저희처럼 드시네.”

예법으로도 빈틈을 잡지 못한 이방이 마침내 마지막 패를 꺼내 들었다.

이방이 좌수의 옆구리에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이자, 수염이 허연 박 좌수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막동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어사 나리, 이처럼 귀한 걸음을 하셨는데 술과 고기만 축내서야 쓰겠사옵니까. 듣자 하니 한양의 윤서겸 나리께서는 문장(文章)과 시격(詩格)이 당대 으뜸이라 들었사옵니다. 오늘 이 경사스러운 자리를 기념하여 어사 나리께서 먼저 한시(漢詩) 한 수를 지어 내려 주시면, 소생들이 감히 그 운(韻)을 따라 화답하겠나이다!”

박 좌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아전이 먹이 흥건히 갈린 벼루와 붓, 그리고 새하얀 시전지(詩箋紙)를 막동의 상 앞에 대령했다.

연회장 안의 모든 눈길이 막동의 손끝으로 모였다.

막동의 등줄기로 차가운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기둥 뒤에 서 있던 구렁이마저 입술을 실룩이며 ‘아이고,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처마 끝을 쳐다보았다.

막동은 시전지조차 똑바로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었다. 칠언절구(七言絶句)니 운자(韻字)니 하는 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딴 세상 소리나 다름없었다. 붓을 잡는 순간 먹물만 뚝뚝 흘리다 그 자리에서 가짜임이 만천하에 드러날 터였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막동의 시선이 상 위에 가득 쌓인 고기 산적과 양반들의 번들거리는 입술, 그리고 구석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서 있는 깡마른 관노 소년 돌이의 해진 옷자락을 차례로 스쳤다.

막동은 붓을 집어 드는 대신, 손등으로 시전지와 벼루를 박 좌수 쪽으로 천천히 밀어냈다.

“어사는 시를 짓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요.”

막동의 차분한 목소리에 박 좌수와 이방이 눈을 깜빡였다.

“임금의 귀가 되어 팔도 백성의 소리와 고을 선비들의 뜻을 듣는 것이 암행어사의 소임이거늘, 어찌 내가 먼저 붓을 놀려 자랑하겠소. 고을 어르신들께서 먼저들 지어 보시오.”

막동이 오히려 판을 넘기자, 박 좌수와 향반들은 신이 나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앞다투어 한시를 읊어 댔다.

“풍곡의 들판에 황금 물결 일렁이고, 어진 사또의 덕화가 봄바람 같구나—!”

태평성대와 풍년을 칭송하는 한시가 이어지고 사또가 흐뭇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릴 때, 막동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르신들의 시는 잘 들었소. 하나 내가 어제 이 고을 어귀를 들어오면서 들은 백성들의 노래는 그와 사뭇 달랐소이다.”

막동은 한문 시구 대신, 평생 장터와 들판에서 등 짐을 지며 들었던 투박한 우리말 사설(辭說)을 낮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가을 들판 벼 이삭은 누렇게 익었건만, 농부네 빈 시루엔 거미줄만 어리었네.

관아 문턱 배 부른 되가 한 번 입을 벌리면, 피땀 흘린 한 말 쌀이 반 말 되어 사라지고,

동헌 마루 기름진 상에 고기 산적 쌓일 제, 거적문 밖 어린것들은 빈 바가지 두드리며 어미 품에 우는구나—!”

글자 하나 배운 적 없는 종놈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였으나, 그 안에는 어제 관아 앞에서 터진 노인의 쌀자루와 고을 어귀에서 보았던 아이의 빈 그릇이 생생한 피와 살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연회장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사또의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이 잘게 떨리며 술이 도포 자락 위로 쏟아졌고, 박 좌수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방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막동은 얼어붙은 상들을 한 번 훑어본 뒤, 소매를 떨치며 연회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시원한 밤바람을 쐬며 관아 마당으로 내려선 막동이 막 한숨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짝! 퍽!

행랑채 뒤편 마당 구석에서 날카로운 매질 소리와 함께 어린아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나리, 잘못했사옵니다! 살려 주시옵소서!”

막동이 걸음을 옮겨 보니, 방금 잔치 자리에서 망신을 당하고 먼저 튀어나온 박 좌수가 땅바닥에 꿇어앉은 관노 소년 돌이를 대나무 지팡이로 사정없이 내려치고 있었다. 돌이가 상을 나르다 실수로 박 좌수의 도포 자락에 국물 몇 방울을 튀겼다는 이유였다.

“이 천한 관노 새끼가 감히 어디다 국물을 뒤집어씌워! 네놈 눈깔엔 양반도 안 보이느냐!”

박 좌수가 다시 지팡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흙바닥에 웅크린 돌이의 찢어진 등허리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막동의 눈앞에 열 살 적 최 진사 댁 마당에 묶여 등이 터지도록 매를 맞던 어린 자신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날 마당을 둘러싼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매를 막아 주지 않았었다.

막동의 몸이 생각보다 먼저 튀어 나갔다.

탁!

내리치려던 박 좌수의 지팡이 자루가 막동의 억센 손아귀에 그대로 틀어잡혔다.

“누, 누구냐— 어, 어사 나리?!”

박 좌수가 기겁해 눈을 부라렸으나, 막동의 눈빛은 아까 연회장에서보다 훨씬 더 무섭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방금 안에서 태평성대와 인덕을 읊던 입으로, 밖에서는 옷자락에 국물 몇 방울 튀었다고 어린아이를 반죽음을 만들어 놓느냐!”

막동이 박 좌수의 손에서 지팡이를 빼앗아 두 동강으로 부러뜨려 땅바닥에 내던졌다.

“사령들은 듣거라! 어린 종에게 사사로운 화풀이로 매질을 일삼은 저자의 관을 벗기고, 당장 형틀에 묶어 볼기 열 대를 쳐라!”

“어, 어사 나리! 소생은 이 고을 좌수이옵니다!”

“좌수면 백성을 개돼지처럼 패도 된다고 누가 가르치더냐! 당장 끌어내라!”

어사의 서슬 퍼런 추상같은 호령에 사령들이 달려들어 사색이 된 박 좌수를 질질 끌고 나갔다.

흙바닥에 쓰러져 있던 돌이는 눈물과 흙먼지가 범벅이 된 얼굴로 막동을 올려다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양반을 벌해 준 사람. 열두 살 소년의 눈에 비친 흰 도포 자락의 어사 나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神)이나 다름없었다.

막동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하며 돌이를 일으켜 세우자, 뒤따라 나온 구렁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돌이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너도 종놈이냐? 이히히. 잘 만났다, 임마.”

이로써 막동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

소란스러운 마당 한구석, 부엌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회랑 기둥 그늘.

그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는 낯선 여자가 있었다.

거친 관비(官婢)의 치마저고리를 걸치고 물기 묻은 나무 소반을 가슴 앞에 안고 서 있었으나, 곧게 뻗은 등줄기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은 평생 부엌데기로 살아온 관비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등불 아래 서 있는 막동의 오른손에 꽂혔다.

아까 연회장에서 막동이 술잔을 쥐었을 때도 언뜻 보았던 그것. 방금 박 좌수의 지팡이를 틀어잡고 부러뜨릴 때 불빛 아래 선명하게 드러난 손바닥 한가운데의 두껍고 거친 지게 굳은살.

평생 붓만 잡았을 한양 사헌부 감찰의 손바닥에 결코 있을 수 없는 흔적이었다.

여자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소리 없이 몸을 돌려 행랑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돌이의 머리를 헝클며 실실 웃던 구렁이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과 소리 없는 보폭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구렁이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저 계집… 관비 걸음이 아닌데?”

최신 회차 열람 완료
현재 공개된 최신 회차(3화)까지 모두 읽으셨습니다.
다음 회차가 승인·발행되면 자동으로 이어보기가 활성화됩니다.
작품 홈 · 세계관 도감 Novel 플랫폼 홈
← 이전 화 (2화) 작품 홈 · 전체 회차 (3화) 작품 홈 · 목차
단축키: ← 이전 / 다음 →
HISTORICAL VERIFICATION · 정조 18년 (1794) 사료 고증

가짜 어사 — 조선 후기 암행어사 제도 및 삼정(三政) 문란 고증 노트

Video 시네마 & 영상 보기
  • 암행어사 임명장 세트(봉서·사목·마패·유척): 어사로 임명된 당하관 문신은 승정원에서 봉서(封書: 출두할 고을 지명이 적힌 밀봉 문서), 사목(事目: 감찰 수칙서), 마패(馬牌: 역마 징발패), 유척(鍮尺: 도량형 및 형구 검수용 놋쇠 자)을 하사받았다.
  • 봉서 개봉 원칙(남대문 밖 개봉): 봉서 겉면에는 '도성 문(숭례문 등) 밖에서 개봉할 것'이 명기되어, 어사 본인도 성문을 나서기 전까지는 자신의 암행 목적지(경기 풍곡현)를 알지 못했다.
  • 세곡(稅穀) 수탈과 되·말(斗斛) 조작: 조선 후기 지방 아전(호방·이방)들은 세곡 수납 시 법정 규격보다 배가 부른 큰 되를 사용해 백성들의 쌀을 초과 징수(모곡)하고, 어사 감찰 시에는 정상 규격의 되로 바꿔치기해 유척 검수를 피하려 했다.